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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덕 신부(서울대교구 전농동성당)

아침에 일어나고, 해야 할 일들을 게으름 피우며 처리한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혼자의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정리한다. 이런 삶 속에서 우리는 잊고 사는 것이 있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때론 무관심해지고 때론 방치하고자 하는 것. 그 중에 하나가 나 같은 성직자에게는 성(性)이다. 괜히 꺼내 봐도 괴롭기만 하고 대놓고 이야기 하려니 왠지 멋쩍은 것. 마치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나를 감싸고 있고 내 삶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성.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무엇이든 너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왜곡되거나 비뚤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무관심 속에서 나를 깨워 준 것이 틴스타 교육이다. 자주 입에 올리고 누군가와 말을 하다 보니 이젠 조금은 더 친숙해진 단어가 바로 성이다.
그래서 성이란 단어를 잘 살펴보고 싶어졌다. 과연 성이란 무엇일까? 몸의 신학에서 들은 것처럼 충만한 하느님의 사랑으로 나가게 되는 통로일 것이다. 여기에 그동안 무심했던 내가 며칠 되지는 않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내 나름대로 생각한 성이란 단어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性(성)이란 단어를 살펴보면 심장의 모습을 본 따서 만든 마음 心(심)과 조그마한 싹이 트는 모습을 본 따서 만든 날 生(생)자가 합쳐져서 생긴 단어다. 이런 까닭에 현대인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성은 육체적인 쾌락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심장이 멈추면 그 사람의 삶이 끝났다고 여겼던 우리 조상들의 생각처럼 마음(생명)에 더 큰 무게가 실려 있는 단어가 바로 성이다.
“마음(심장)이 자그마한 잎사귀처럼 피어오르는 것.” 그러기에 마음이 없다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성이라면, 더 나아가 성이 지닌 생명(심장의 태동)에 대한 고귀함을 무시한다면 성은 초라해지고, 너무나 무의미해진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우리 자신이 파괴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무엇이든지 내 자신이 바라는 것은 성취되어야 하고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성에 대한 모습은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 내가 갖고자 하는 것’이 나도 모르게 나를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다. 난 승자이지만 패자이다. 난 성을 내 마음대로 상용했지만 그 성은 나의 또 다른 심장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