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zine_01_07
 
 
박규식 신부(의정부교구/틴스타 본부교사)

형제들이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영의 한몫을 얻을 수 있도록 육신이라는 형상을 잘 섬기어라.” 교회가 육신이고 그리스도가 영이라고 말한다면 육신을 모멸하는 자는 교회를 모멸하는 것입니다. 육신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원한 생명과 불사불멸을 받을 수 있습니다.
- 2세기 어느 저술가의 강론 중에서 -

저는 틴스타 안에서 몸의 신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몸의 신학적 의미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몸의 소중한 가치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인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 안에서 특히 플라톤의 이원론적 사고의 영향 속에서 몸은 영혼을 가두는 감옥으로 오랫동안 치부되었으며, 또한 이런 생각은 교회에도 영향을 주어 중세기에는 육을 삼구(三仇-세속, 육신, 마귀)중의 하나로 여기며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구원을 위해 육신의 본성과 싸워 이겨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향 때문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스스로 몸의 소중함을 상실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몸의 소중한 가치를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저에게 위에 있는 글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것처럼, 땅에 묻혀 있는 보물을 발견한 듯 기쁘게 하였습니다.
2세기에 쓰인 글이기에 그 기쁨은 더 컸습니다.
초대교회 안에서 우리의 몸은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아니 세상 창조 때부터 우리 몸은 소중하게 만들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태초에 사람을 진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어떤 피조물에게도 하지 않으신 행동을 하십니다. 행동은 코에 생기를 불어 넣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몸은 하느님의 생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 의미는 하느님의 생명이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생명은 유한한 생명이 아닌 무한한 생명입니다. 다시 말해 유한한 우리 몸에 담긴 생명은 하느님의 무한한 생명입니다. 어떻게 유한한 우리 몸 안에 무한한 생명을 담아 두셨는지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신비란 이해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신비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하느님의 초월적 능력이 이 세상에 드러남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몸에 담긴 생명은 하느님의 신비로움의 드러남입니다. 우리 몸은 생명을 담고 있고, 그 생명은 하느님의 신비를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분명 우리 몸 안에 당신의 영원함을 담아 두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몸은 썩어 없어질 하찮은 것이 아닌 2세기 저술가의 강론에 나와 있는 것처럼 우리 몸은 성령의 도움으로 영원한 생명과 불사불멸을 얻을 수 있는 몸입니다.

우리의 몸. 이것은 눈에 보이는 하느님의 신비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 신비로움을 깨달아 영원함을 얻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