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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재량 신부(광주대교구 삼학도 본당)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우리가 함께 했던 1박 2일의 틴스타 재교육 이후, 정처 없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통합적인 삶을 살도록 오늘도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계실 선생님들을 떠올리며 저의 작은 마음을 함께 나누어 봅니다.
   제가 누구인지 잘 모르시겠다고요? 성(性)하면 떠오르는 빛깔을 물어보았을 때, 검정색이라고 했던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사실 그때, 검정색을 선택하고 설명을 하려했지만,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라서 미처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다 털어놓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제 나름대로는 검정색을 선택하면서, 20대의 한창 꽃피던 젊음을 검은 수단 자락 속에 가두어 놓아야만 했던 제 신학교 시절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습니다.
   혈기왕성한 20대에 남자들만 사는 환경에서, 거룩한 남자로 길러져야만 했고, 절제하고 인내해야만 했던 규칙생활에 길들여 가면서, 성정체성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나는 남자로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남자로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가? 남자이지만 남성성이 오히려 나에게는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신학교 밖을 잠깐 나갔을 때나, 방학이 되어 본당에 나갔을 때, 이성을 바라보는 눈이 삶의 동반자나 아름다운 피조물로 바라보지 못하고 내 자신을 시험하는 대상이거나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대상으로 바라보아야만 했었습니다. 그러다 서품을 받고 난 뒤에는, 늘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그들이 누구보다도 친근하고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해주었고, 기대고 싶거나 때론 내 마음을 나누고 싶은 대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저의 생각의 변화들을 들여다보면서, 성 정체성에 대한 흔들림이나 이성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이 환경을 통해서 강요된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가 그런 생각의 틀을 만들어놓았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성적인 관심과 욕구를 정지해 놓았을 뿐, 언제든지 플레이가 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제로 살면서도 성적인 자아와 대면하게 될 때마다 제가 아직 성숙한 어른이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틴스타 교육은 저 아닌 다른 대상을 가르쳐야 할 수단이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성적인 존재로서 성숙하지 못한 저에게 정서적, 영적인 차원에서 보다 더 성숙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도록 이끌어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이고, 어떻게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의 모습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틴스타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것이 제 개인적으로는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언젠가 ‘침묵으로의 초대’라는 제목으로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촬영한 특집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수도원의 한 수사님이 이런 말씀을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나는 신께서 인간에게 의도적으로 욕망을 심어주셨다고 본다. 인간은 결국 욕망의 존재이다. 욕망이란 뭔가를 추구하고 사랑하고 충동을 느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욕망을 어디로 향하느냐이다. 신을 향한 욕망은 아름다운 축복이다. 그것이 우리 삶에 가치를 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삶은 흥미로운 것이다.”
   하느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시는 모든 틴스타 선생님들, 그리고 배 마리진 수녀님의 앞날에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